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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ATI) 기업탐방] 페이지룸8 (아트모아 기자단 5기 이혜원)

작성자 : 곽송비 조회수 : 1,060 2025-12-30

[아티(ATI) 기업탐방] 페이지룸8


책과 전시, 기록과 기획이 한 공간 안에서 만날 수 있다면?

페이지룸8 박정원 디렉터



‘페이지’와 ‘룸’, 인쇄물과 전시 공간의 연결을 상상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현대미술을 기획해온

1인 갤러리 페이지룸8


그곳을 이끌어온 박정원 디렉터님과

기록이 전시로, 전시가 책으로 이어지는

예술 실천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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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선 작가, p24-14 앞에서




'페이지룸8'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책(Page)과 공간(Room)의 연결성이 느껴져요. 처음 갤러리를 오픈하실 때 어떤 공간이 되기를 꿈꾸셨으며, 이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처음에는 어떤 공간이라고 규정해 놓지 않았어요. 2005년 9월 큐레이터 활동을 시작한 이후 오랜 시간 여러 현장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생겨났고, 그렇게 필요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생각이 이어져 지금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페이지룸8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 배경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2013년부터 2016년 ‘미술 세계’라는 잡지사에서 근무했었습니다. 전시는 보통 큐레이터나 작가가 전면에 드러나는 반면, 잡지는 책 자체가 전면에 드러나서 뒤에서 조용히 일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원고 작성이라든가, 특집 기획을 구성한다거나, 기자들과 편집회의를 진행하는 업무를 주로 수행했습니다. 제가 직접 취재하고 기획 기사를 구성하는 과정이 전시 기획안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 관련 일을 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책으로만 남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입체적으로 구성한다면 재미있는 전시가 될 것 같은 내용들이 눈에 밟혔어요. 그래서 큐레이터로 다시 복귀했을 때에도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갖고 있었습니다. 도록을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9년 10월에 일본이랑 한국 작가들이랑 판화 전시를 같이 기획했었는데, 그때 만든 도록 겸 테마북은 관람객에게 기념품처럼 하나씩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구성했습니다.

페이지룸8을 구상하게 된 것도 이러한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전시의 ‘룸’과 책의 ‘페이지’가  유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얽히는 관계를 만들고자 했고, 무한한 연결성을 상징하는 숫자 ‘8’을 이름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페이지룸8이 시작되었습니다. 




2021년 3월 북촌에 첫 오픈하고서 꾸준히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어요. 대형 갤러리와 달리 1인 갤러리는 디렉터의 취향과 안목이 갤러리의 브랜드 그 자체가 되는데, 페이지룸8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색깔을 가진 갤러리라고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페이지룸8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관람객, 즉 제3자의 시선에서 공간의 색이 정해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직접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여백을 남겨두는 방식을 택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비워둔 상태였기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전시 공간처럼 보였지만 페어에도 참가하고, 책도 출판하고, 다른 큐레이터님이랑 협업도 하고, 갤러리 간 프로젝트도 같이 진행해왔습니다. 이처럼 한 가지로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공간은 대표의 이미지가 어떠냐에 따라서 공간의 정체성이 좌우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메종 마르지엘라가 그래요. 디자이너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디자인한 의상 자체가 브랜드를 대변하죠. 저 역시 그러한 방향을 지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에 북촌에서 서촌으로 공간 이전을 했는데, 이전 공간 소규모지만 책을 입체적으로 펼쳐놓은 듯한 특별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공간이 커진 지금, 예전 공간을 기억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겠지만, 이 새로운 공간에서 쌓일 정체성에 대해 저 역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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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시리즈 9. 윤미선 Yoon Miseon: 원형 초상 Circular Portrait / 2025 / 사진_양이언




페이지룸8는 꾸준히 기획 전시 ‘이 작품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디렉터님께서는 이 작품 시리즈를 통해 작가의 작품 단 한 점만으로 작가의 세계를 깊이 있게 조망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획 의도를 가졌다고 밝혔습니다. 이토록 과감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관람객들이 기획 전시를 통해 어떤 미학적 경험을 하길 바라시나요?


‘이 작품 시리즈’  중진 작가나 인기 작가에게 일반적으로 따라붙는 고정된 이미지, 즉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르는 특정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기획한 전시입니다. 작가는 매번 새로운 걸 해야 되는 창작자이자, 자신만의 독창성을 넣어 새롭게 탄생시켜야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획자로서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고 싶은 분들을 뽑아서 전시를 한 게 ‘이 작품 시리즈’예요.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생뚱맞은 이미지를 끌어와 연결해 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예를 들면, 현재 작업의 출발점이 된 과거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인데, 그 과거 작업은 지금의 이미지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관람객은 그 낯섦을 통해 작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또 다른 감각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최근에 진행한 윤미선 작가님 경우에도 현재는 정리되고 단일한 이미지의 초상을 작업하지만, 과거에는 다중적인 이미지와 혼돈이 중심이 된 작품을 그렸습니다. 이처럼 작가가 직관적으로 본인의 다양성을 보여 줄 수 있는 면모라 생각해서 구성을 했습니다. 인지도 높고 젊은 작가의 같은 경우는 그 작가에게서 특정 이미지를 찾으려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런 부분을 타파하고 싶어서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지 못했던 걸 보게 한다거나,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을 가지고 환기시켜 주는 것이 예술의 순기능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 시리즈’에 참여하는 작가님들이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거죠.




페이지룸8은 인스타그램뿐만 아니라 블로그, 유튜브 등 다양한 SNS를 운영하시는 걸로 알아요. 디렉터님께서는 출판물을 통해 전시를 기록으로 남기는 아카이빙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은데, 이렇듯 다양한 SNS에 남기는 기록 또한 디지털 아카이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휘발되기 쉬운 SNS 콘텐츠를 갤러리의 자산으로 만들어 나가는 디렉터님만의 노하우가 있으실까요?


네, 말 그대로 페이지룸8의 자산이죠. 현재는 물리적으로 한 전시 당 6개에서 12개 사이로 피드를 맞추려고 하고, 피드만 봐도 전시의 내용을 알 수 있게 중간중간 텍스트나 중심이 되는 이미지로 구성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작권 문제와 더불어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 되도록이면 직접적으로 이미지를 전면에 내보이려고 하진 않아요. 대신 갤러리에서 직접 취한 전시 전경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작가님들의 작업 과정을 남겨 두려고 노력하고, 전시장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담는다거나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릴스나 숏츠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 제작물에 관심 가져 주시는 분들이 꽤 많으시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다시 오프라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느끼고 있어서 SNS를 활용한 오프라인 모임을 모집하고 있는데 쉽지 않아요. 늘 고민되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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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성 브릭북 Jeong Zik Seong BRICK BOOK, 사진_양이언




페이지룸8은 작가들의 도록과 출판물을 꾸준히 판매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디렉터님께서는 전시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출판물의 형태나 내용을 염두에 두시나요? 아니면 전시가 완성된 후 그 흐름을 책에 담으시나요? 전시와 출판이 서로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받는지 그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출판물은 전시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지는 않습니다. 대신, 작가님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분과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시작하게 됩니다. 정직성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시그니처 작업이 연립 주택인데, 그 디자인을 적용한 게 빨간 벽돌 디자인의 도록이에요. 그래서 출판물로 만들어보고 싶은 작품이거나, 작가의 전작을 가지고 어떤 테마를 만들까, 어떤 디자인적으로 적용할 만한 요소가 있나를 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편집과 기획도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책은 출판사처럼 양산을 못 하고, 비용적으로도 문제가 많은데, 책이라는 건 SNS 콘텐츠와 다르게 휘발되지 않잖아요. 그리고 잘 만들어 놓으면 얘는 판매로 이어질 수 있있고, 무엇보다도 저에게는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책보다는 전자책, 책보다는 영상 매체를 선호하는 시대가 됐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종이에 남기는 작업을 고수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전자책과 영상 매체보다는 종이책이 아날로그인 건 자명한 사실이에요. 그런데 또다른 이면으로는 전시나 작가의 실질적인 작품에 비해서는 굉장히 컴팩트하고 자유롭습니다. 책을 통해 작가의 전작이 집대성되고, 이동이 자유로우니까 좋은 매체로 느껴지는 것이죠. 여러 곳에서 판매되는 것을 보면 어디든 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실제로 닿았을 때, 손에 잡히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봤을 때에는 전시를 보는 어떤 동선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본인이 만나고 싶은 작품을 대신 만나고요. 가령 책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더라도, 내밀하게 다가오는 지점들이 때문에 책이라는 매체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오프라인이나 종이책만의 느낌을 아는 분들이 매니아처럼 남을 거라 생각해요. 그분들에게 소중해서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은 게 계속해서 작업을 고수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대형 갤러리와 달리 1인 갤러리는 디렉터의 취향과 안목이 갤러리의 브랜드 그 자체가 되잖아요. 디렉터님께서 작가의 작품을 관객에게 전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시 언어는 무엇인가요?


이 작가의 작품이 나에게 어떤 여운으로 남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 여운이 어떠한 형태로, 어떠한 강도로 남느냐는 시각적인 동선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어떤 동선을 구성할 때 기획자나 작가가 같이 협의해서 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징검다리처럼 구성하거나, 크기에 차이를 두거나 해요. 기획자가 보기에 의미가 있는, 짚고 넘어가야 될 작업을 단독으로 걸기도 하죠.




하나하나 고심해서 배치하시는 거네요. 동선까지를 기획자의 의도로 특별히 취급하시는 게 관람 포인트 중 하나 같아요.


네, 맞아요. 특히 공간이 비정형이다 보니까 신경 쓰는 것도 있어요. 예전 북촌에서는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공간이라 작가님들이 오히려 긴장했는데, 지금 공간은 물리적으로도 작품 수가 많이 필요한 공간이 돼 버려서 기획이 더 부각되고, 더 신경 쓰게 됩니다.

 


페이지룸8은 현대 미술을 주로 전시하시잖아요. 그 과정에서 신진 작가나 재조명이 필요한 작가를 발굴했을 때, 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전시는 타인을 위해 만들기 때문에 많이 관람하러 와 주시는 게 가장 좋죠. (웃음) 그리고 이 전시를 통해 작가한테 새로운 기회가 생기거나, 해외 전시를 하게 된다거나, 좋은 소장자를 만나거나 할 때 보람을 느껴요. 특히 좋은 소장자는 다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잠정 관객이거든요. 또다른 말로 팬이 되는 거고요. 소장이라는 행위는 작가를 계속 지켜보겠다라는 암묵적 행위라 생각해요. 그런 건강한 관계에서도 보람을 느낍니다. 저희와 전시를 할 때까지만 해도 신진 작가였는데, 여러 전시를 거쳐서 알려지는 분들을 봐도 그래요.




1인 기업은 기획, 섭외, 디자인, 심지어 청소까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할 게 굉장히 많잖아요. 가끔은 외롭거나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혼자 하길 잘했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돌아보면 ‘혼자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떤 기관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아침잠이 많아서 출근 시간 맞추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웃음) 다른 점이라 하면, 혼자해서 결재 라인이 없다보니 , 빠르게 진행되는 부분이 있어요. 집약적으로 혼자서 3년간 해 오니까 정체성 구축이 빨랐던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혼자 하면 힘에 부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는 다른 기관의 대표님들을 만나서 자문을 구하거나 위로를 얻게 돼요. 그런 점에서는 광범위한 동지가 생긴다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매일을 업무와 함께하다 보면 개인의 삶과 갤러리의 일상이 분리되기 어렵잖아요. 페이지룸8 디렉터라는 직함 뒤에 있는 ‘인간 박정원’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는지, 휴식을 취할 때는 주로 무엇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환기가 필요할 때는 근처에 있는 갤러리에 들어가요. 그냥 들어가서 관람하는 거죠. 제가 전시를 좋아해서 하게 된 일이다 보니까, 덕업일치가 되니까 좋더라고요. 휴식을 분리한다기 보다 다른 전시를 보고 오는 것 자체가 힐링이 돼요. 작가 노트나, 도록도 있으면 읽어 보게 되고, 배우는 부분들이 생기니까요. 그리고 미술관 가면 도슨트분들의 설명을 들으려고 해요. 그분들이 이끄는 대로 전시를 관람하고, 주는 정보들이 새롭고 재미있으니까, 휴식이 되는 것 같아요. 지금보다 감성이 충만했을 때는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콘서트를 가기도 했고, 뮤지컬도 보고, 연극도 많이 봤어요. 이제 더 이상 미술 안에서 미술을 만들 수 없다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라도 방방곡곡 다니고 있습니다.

 



갤러리를 준비하시면서 “이것만은 꼭 내 방식대로 해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타협할 수 없었던 원칙이 있으신가요?


초반 1~2년 동안은 지인이나 외부에 의해서 추천받은 작가를 전시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때 코로나 시기였어서 SNS를 통해 내가 모르는 작가와 전시하겠다, 내가 알고 있는 작가와 개관전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었어요. 페이지룸8이라고 하면 젊은 이미지를 가지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신진 작가들의 기운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개관전 때 문정 작가랑 고니 작가를 찾았고, 이 과정들이 어렵고 힘들어도 넘어섰을 때의 성취감이 큰 걸 아니까 계속해서 원칙을 세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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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 Esquisse(1) 고니x문정 -정오의 그림자 / 2021 / 사진_양이언




페이지룸8은 ‘더프리뷰 성수 WITH 신한카드 2024’ 참여, ‘아트부산 2025’ 등 아트페어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갤러리 전시와 달리 아트페어는 짧은 기간, 한정된 부스 안에서 갤러리의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줘야 하잖아요. 여러 갤러리들 사이에서 페이지룸8만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디렉터님만의 전략이 있나요?


감사하게도 북촌에 있을 때 생긴 전략이 있어요. 당시 공간이 워낙 작았기 때문에, 오히려 아트페어의 부스가 더 넓게 느껴졌고, 그 점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부스를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큰 전시의 기회’로 생각했던 것이죠. 아트페어임에도 불구하고 외부 전시처럼 느껴지도록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단순히 눈에 띄는 색으로 페인트칠하는 방식보다는, 전시 형식을 갖추고 텍스트도 함께 구성해 깊이를 더했습니다. 이를 위해 작가님의 작업실을 방문해 작업을 꼼꼼히 살펴보고, 전시를 준비하듯이 기획했습니다. 그 결과 부스의 전반적인 퀄리티를 높일 수 있었고, 작가님들 역시 아트페어를 위한 신작을 준비해 주셔서 더욱 주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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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 부산 ART BUSAN_정직성 Jeong Zik Seong, 류예준 Ryu Yejun / 2025 / 사진_최철림




1인 기업으로서 아트페어를 진행하게 된다면 부스를 지키며 컬렉터를 직접 응대하셔야 하잖아요.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디렉터가 직접 컬렉터들과 접촉한다는 사실은 컬렉터들에게 더욱이 신뢰를 주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 같아요. 현장 반응은 어떤가요?


저 혼자 부스를 지키고, 제가 말을 잘한다고 해서 보러 오신 분들이 작품을 사진 않거든요. 구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부스에 있는 작품이 눈을 사로잡아야 하고, 그중에서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저를 찾으세요. 기본적인 인사는 하지만, 현장에서는 자세한 설명보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드리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흡수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되, 알아서 보시는 걸 좋아하시더라고요. 만약 저한테 질문하시면 잘 응대해 드리고, 이 작가가 왜 이 재료를 쓰고, 왜 이런 액자를 선택했는지 등 물성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해 드리고 있어요. 이 페어 안에서는 제가 이 작품을 보증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컬렉터들에게 믿음을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작가랑 꾸준히 전시를 해 오고, 작가의 작품을 최대한 많이 아는 사람으로서 소개해 드려요. 

 


아트페어는 짧은 기간 동안 승부를 봐야 하는, 어쩌면 상업의 최전선이라 말할 수 있잖아요. 대중성과 디렉터님이 지향하는 작품성 사이에서 고민이 될 때, 보통 어떤 기준으로 출품작을 결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아요. 대신 저는 다음 해에 전시가 예정되어 있는 작가님 중에 되도록 전시 전에 페어의 나갈 수 있는 시기가 맞는 작가님들과 나가려고 해요. 왜냐하면 이 작가님의 작업을 보고 전시로 유입될 수 있는 관람 잠재 관람객을 유치하는 거죠. 페어 현장에서 작품이 판매되는 것도 물론 좋지만, 홍보 차원에서도 페어는 훌륭한 창구거든요. 예를 들어, A 작가님 전시가 9월에 열린다면 페어는 5월인 거죠.아트페어에서는 많은 작품을 소개할 수 없지만 해당 작가의 작품에 관심있는 분들의 정보를 모아 다음 전시를 보실 수 있게 안내해 드리고 있어요. 저는 그런 전략적인 방법으로 아트페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출품작을 결정하는 기준도 어떤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느냐를 보지 않고, 대중을 유입시키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쓰느냐로 결정하고 있어요.




앞서 "페이지룸8을 정의해 두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었다"는 말씀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북촌을 거쳐 서촌이라는 더 넓은 공간에 당도한 지금, 이 새로운 공백에 디렉터님이 개인적으로 욕심내어 채워보고 싶은 전시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북촌 페이지룸8에서는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그리고 작가의 작품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자 많은 시도를 했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작은 공간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시도해봤다고 생각하지만, 입체나 설치, 미디어 장르의 전시는 공간 제약으로 다소 부족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에 비해 서촌 페이지룸8은 북촌에 비해 3배 정도 넓어졌는데요. 그래서 그동안 초대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입체, 설치 장르 작가님들과 전시를 서서히 실현하고 싶어요.

물론 타 기관과의 협업 또한 계속 염두에 두고 있어요. 연초마다 페이지룸8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님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옥토-"전시를 2025년 초에는 특별히 북촌의 갤러리 지우헌과 진행했었어요. 지우헌 작가(14명)들과 페이지룸8 작가(24명)들이 합쳐서 모두 38명이 모였었죠. 작가 1명당 두 작품을 준비하고 각각 1점씩 나누어 실치했었어요. 당시 여러 사회적 이슈로 어려운 시기였지만, 북촌 미술 기관들이 연대하며 전시를 성사시킨 점에서 많은 응원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페이지룸8이 서촌으로 이전한 상태이기 때문에 지우헌과 당장의 협업은 어렵지만, 추후 날씨가 좋은 시기에 서촌과 북촌을 잇는 ‘옥토 프로젝트’를 다시 추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저는 페이지룸8의 가장 중요한 고객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이 다시 찾고 싶고, 함께 작업하고 싶은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작가들과, 작가를 주목하는 관람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페이지룸8만의 유동적이고 규정되지 않은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믿습니다.

그 소통의 방식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전시’이며, 두 번째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기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며 확장해가고 싶습니다. 나중에는 이 모든 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도 시도해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