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탐방
[아티(ATI) 기업탐방] 오롯플래닛 (아트모아 기자단 4기 성예진 기자)
[아티(ATI) 기업탐방] 오롯플래닛
배리어프리 자막으로 청각장애인들의 문화 소외 장벽을 허물다.
오롯플래닛 최인혜 대표
‘배리어프리 자막’이란 대사, 화자, 효과음, 배경음악 등 모든 소리 정보를 담고 있는 자막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막의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평소에 즐겨보는 드라마, 영화, 공연에서 갑자기 소리가 사라진다면, 그 콘텐츠를 온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까요?
우리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문화 콘텐츠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러한 콘텐츠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바로 청각장애인들인데요. 이들에게 배리어프리 자막은 문화 소외 장벽을 허물어주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오롯플래닛’은 배리어프리 자막 서비스 운영을 통해 모두가 차별 없이 문화를 향유하는 세상을 꿈꾸는 기업입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배리어프리가 필요한 곳을 찾아 손을 내미는 오롯플래닛 최인혜 대표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오롯플래닛 최인혜 대표
오롯플래닛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대표님 소개도 간단하게 부탁드립니다.
오롯플래닛은 모든 사람이 동시대의 문화 콘텐츠를 신선하게 즐기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입니다. ‘동시대의 문화 연결’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리어프리 자막 서비스 운영을 통해서 모두가 언어 장벽 없이 콘텐츠를 즐기고, 문화적인 공감대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8년도에 대학교 동아리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롯플래닛을 운영하고 있어요. 뮤지컬도 좋아하고, 문화 콘텐츠를 좋아해서 오롯플래닛에서 배리어프리 자막 서비스를 콘텐츠에 넣는 작업을 즐겁게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롯플래닛’이라는 기업명이 가진 의미와 그 속에 담긴 가치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오롯 영화를 읽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영화 자막만 제작했었어요. 그러다가 다양한 곳에 배리어프리 자막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분야를 확장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오롯플래닛’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오롯은 모자람 없이 온전하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모두가 문화를 온전히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했습니다. 또 저희는 자막 제작에 참여하시는 봉사자들의 힘이 모아져야 변화가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계속 늘리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나 공간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오롯플래닛’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오롯플래닛 로고
사실 본인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불편함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청각장애인의 문화 소외에 관심을 가지고 배리어프리 자막 서비스를 사업화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뮤지컬을 좋아해서 뮤지컬 잡지 구독을 계속했었어요. 고등학생 때 뮤지컬 잡지를 보는데, 거기에 청각장애인 관련된 내용이 나와 있더라고요.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데프 웨스트 시어터(Deaf West Theatre)라는 극단이 스프링 어웨이크닝 공연을 한다는 걸 보고 좀 충격을 받았어요. 이미 완성이 된 작품을 변환하는 연출적 시도를 통해서 장애인 분들도 공연을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동시에 ‘그럼 청각장애인은 지금까지 뮤지컬을 어떻게 봤던 거지?’라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뮤지컬을 좋아했던 이유는 다른 대중 콘텐츠보다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생각해서였거든요. 그런 이유로 되게 멋있는 장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공연장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몸이 불편하지 않은 비장애인밖에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그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제가 사회복지 전공이기도 해서 이런 문화 예술 쪽에서 할 수 있는 복지가 뭐가 있는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배리어프리 자막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배리어프리 자막은 일반 자막보다 제작하기가 더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작하는 과정에 있어서 특별히 신경 쓰시는 점이 있을까요?
배리어프리 자막은 사실 모든 소리 정보를 전달한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영상에는 효과음도 있고 화자 표시, 음악 표시도 있는데 모든 소리를 전달한다고 하면 정말 시시콜콜한 소리까지도 들어가야 해요. 그런데 연출적으로나 극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소리까지 포함했을 때는 시각적으로 피로도가 있기도 하고, 보는 사람도 저 소리가 왜 들어가 있는지 의아할 수 있기 때문에 소리를 선별해서 넣는 과정이 일반 자막을 제작하는 과정보다 까다롭습니다. 일반 자막보다 많은 설명이 필요하면서도 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 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로만 들어가야 하거든요. 당연히 시간도 일반 자막을 제작하는 것보다 한 1.5배에서 2배 정도 오래 걸리는 편이고요.
그래서 작업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배리어프리 자막을 입력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보다도 이 자막을 어느 타이밍에 넣어야 하는지, 이 소리는 표기를 해야 할지 혹은 이 소리는 어떤 식으로 입력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많은 것 같아요.
직접 자막 제작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셨는데, 오롯플래닛 자막 제작 프로그램만의 장점이 있다면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기존의 자막 제작 툴들은 대부분 전문가용이라 봉사하시는 분들이 짧게 참여하면서 제작하기에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물명을 입력 해놓을 수가 있어요. 등장인물들 이름을 적어놓고 그걸 클릭하면 복사가 돼서 인물명을 자막에 바로 넣을 수 있습니다. 또 여러 가지 기호들의 복사도 쉽게 할 수 있고요. 이런 식으로 배리어프리 자막 제작에 편리함을 제공해서 전문가가 아닌 분들도 쉽게 자막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인 것 같습니다.

오롯플래닛의 프로그램으로 자막 제작 봉사활동을 하는 봉사자들
최근에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공연과 같은 오프라인 콘텐츠 쪽으로도 배리어프리 자막 제공 범위를 넓히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오롯플래닛 인스타그램에서 연재를 시작한 ‘우당탕탕 뮤지컬 자막 도전기’도 기대가 되는데요, 오프라인 콘텐츠 자막을 제작할 때 온라인 콘텐츠에 비해 더 어려운 점이 있을까요?
배리어프리 자막은 사실 자막이라고 하긴 하지만 굉장히 간단한 서비스잖아요. 전문성이 크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편집적으로도 어렵지 않은데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제약 요소가 많아요. 저작권 이슈가 많아서 제작사가 허가를 안 해주면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되게 많거든요. 그래도 온라인 콘텐츠는 영상의 하단에 자막이 삽입만 된다면 완성이 되지만 오프라인 콘텐츠는 훨씬 더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요.
우선 온라인 콘텐츠와 다르게 자막의 위치부터 고민을 많이 해야 해요. 바로 눈앞에 둘지, 무대 옆, 위, 아래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관객 만족도가 너무 달라지거든요. 또 자막을 제공하려면 디바이스도 필요한데 공연장은 이러한 디바이스 사용에 민감하죠. 자칫하면 다른 관객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디바이스를 좌석에 놓았을 때 다른 관객들의 시야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도 고려해야 해요. 각 공연장의 좌석마다 설치해야 하는 거치대의 모양이나 의자의 곡률도 다 다르고, 같은 공연장이라도 앞열과 뒷열의 시야 차이 때문에 디바이스 설치의 표준안을 만들기도 쉽지가 않고요.
자막 도전기에 담을 내용이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하지 싶을 만큼 여러 고민이 있지만, 자막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기 위해서 이런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오롯플래닛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우당탕탕 뮤지컬 자막 도전기’ 1편 일부 캡처


뮤지컬 ‘사의 찬미’ 공연장에 설치된 자막 디바이스
말씀을 들어보니 공연 분야로 서비스 범위를 넓히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분야를 넓히는 도전을 하신 것처럼, 후에 또 도전하고 싶은 다른 분야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콘서트 같은 쇼에서도 자막이 필요할 거로 생각하고 있어요. 오히려 그런 곳에서는 자막 수용이 더 잘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돌 콘서트에 가는 관객 중에서 외국인 팬분들이 엄청 많다고 하더라고요. 콘서트 중 토크할 때 갑자기 누군가 울거나 웃는 상황에서 공감을 전혀 못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언어가 달라서 공감을 못 하는 이러한 경우도 청각장애인들이 배리어프리 자막이 필요한 상황과 비슷한 맥락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콘텐츠 분야로 확장할 수 있는 방향성은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셨을 당시에는 지금보다 배리어프리 자막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했을 텐데 사업 초기에 마주하신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극복하신 방법도 궁금합니다.
저희가 처음에 활동할 때는 배리어프리라는 생소한 단어를 설명하기 되게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넷플릭스 자막을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훨씬 수월해지긴 했어요. 그래서 제가 극복을 했다기보다도 시류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요, 초반에는 이제 배리어프리 자막이 뭔지 설명을 하려면 배리어프리의 개념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야 하다 보니까 이미 거기서 서로 지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참여하실 수 있는 캠페인 부스 같은 걸 좀 많이 열었었어요. 소리를 꺼놓은 상태에서 영화를 보여드리고 “이 장면에 들어갈 자막이 어떤 걸까요?”라고 질문을 하거나, 멈춰 있는 사진을 보고 “효과음을 상상해서 적어보세요”라고 하는 등의 여러 캠페인을 통해서 먼저 체험해 보시게 한 다음에 청각장애인들은 이런 자막이 있어야 하고, 이런 자막이 많아져야 콘텐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어요. 이런 식의 캠페인을 운영하면서 점차 극복했던 것 같습니다.
자막 제작이 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만큼 배리어프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 향상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봉사자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어떤 것을 배우고 얻어가기를 바라시나요?
봉사자분들이 자막 제작 봉사활동을 통해 무엇을 얻어 가야 하는지에 대해 저희도 내부적으로 많이 고민했어요. 봉사자분들이 배리어프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봉사자들이 직접 참여해 보면 배리어프리 자막에 필요성을 느끼게 될 거고 배리어프리에 대한 인식도 자연스럽게 향상될 거로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배리어프리에 대해서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 봤자 많아야 봉사자들 몇백 명만 알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을 제대로 변화시키면 그들이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단순히 자막 제작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배리어프리를 고려하고 고민하는 방법을 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봉사자분들이 그 제작 기술을 얻는 게 중요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대신 배리어프리의 필요성을 깨닫고, 각자의 분야에서 배리어프리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배리어프리를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오롯플래닛이 단순히 경제적 가치만을 중요시하는 기업이 아님이 느껴지는데요, 오롯플래닛을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최근에 있었던 일로 말씀드리면, 공연을 되게 많이 보시는 청각장애인분이 있으시거든요. 그분이 저희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는 공연을 보러 오셨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분은 그동안 공연을 볼 때 입 모양을 읽기 위해서 맨 앞자리에서 여러 번 공연을 관람하는 분이셨어요. 시나리오를 요청해서 받아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자막이 없기 때문에 여러 번 봐야 공연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셨죠. 그런데 저희 서비스를 통해 ‘사의 찬미’를 보시고 처음으로 공연 내용을 한 번에 다 이해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서비스가 청각장애인에게 정말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습니다.
또 다른 일화로는, 자막 안내 서비스를 진행 중인지 몰랐던 외국인 관객이 공연을 보러 왔다가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는 걸 보고 예매를 하시기도 했어요. 이렇게 저희 서비스가 필요한 고객들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아주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800여 편의 자막 제작, 배리어프리 자막 상영회 진행, 여러 기업이나 제작사와의 협업 등 오롯플래닛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보면 많은 성장을 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오롯플래닛은 어떤 기업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배리어프리가 필요한 곳들을 계속 찾아내는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서비스를 계속 만드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바라는 것 같아요. 저희는 대학 동아리 때부터 함께 해온 3명의 인원으로 지금까지 진행을 해오고 있고 엄청난 기술력이 있는 회사도 아니지만 배리어프리에 대한 문제의 솔루션을 만들고, 또 여러 자원들을 끌어오는 게 저희의 역량이거든요. 좋은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배리어프리 자막이 시장에서 필요한 서비스라는 것을 느꼈으면 해요. 그래서 배리어프리에 대한 고민이나 비어 있는 부분을 계속 찾아내고 솔루션을 만들어가는 기업이 된다면 만족스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롯플래닛 최인혜 대표
마지막으로 대표님처럼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일을 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각자의 역할과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배리어프리 자막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감독님, 연출가님은 물론이고 기획사 담당자, 티켓 매니저, 콘솔 담당자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전부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한명 한명이 전부 중요한 의사결정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 꼭 저처럼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창업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각자의 역할이나 직무에서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이 각자의 자리에서 배리어프리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고 너그럽게 수용해 주신다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더 빠르게 끌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조언이라기보다는 요청이죠.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