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하단링크 바로가기
출석 QR 팝업 닫기
예술산업아카데미

(재) 예술경영지원센터

설문참여

기업/직업 정보

  • 홈으로

기업 탐방

[아티(ATI) 기업탐방] 서울특별시 조각도시서울 예술감독 (아트모아 기자단 5기 최교민 기자)

작성자 : 곽송비 조회수 : 640 2025-12-16

[아티(ATI) 기업탐방] 서울특별시 조각도시서울 예술감독





“예술가로서 자신의 색깔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서울특별시 조각도시서울 예술감독 이후창

 

예술가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다.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끝없는 항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너무도 불확실한 예술인의 미래.


오늘은 2008년 1회 개인전 이후 현재 43회의 개인전에 이르기까지

지난 17년 간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이후창 서울특별시 예술감독을 만나,

그의 조각가로서의 시작과 지난 작품들,

그리고 직업을 바라보는 가치관에 관해 나누었던 대화를 공유하고자 한다.







 

서울특별시 예술감독 이후창






반갑습니다 작가님.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조각가이자, 현재 서울특별시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이후창이라고 합니다.

 


조각가가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소개해주세요.

조각가는 입체 작업을 하는 예술가입니다. 미술 분야엔 디자인, 서양화, 동양화, 조각 이렇게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조각가라고 하면 일반인들의 생각엔 돌을 깨는 사람들인가 하고 착각하실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조소의 개념인 거예요. 그래서 흙으로 만들거나 깎아내는 과정들을 모두 포함하는 입체 작업들을 통틀어서 조각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설치 작업을 하기도 하고 미디어와 결합이 되면서 장르가 혼합이 되어서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공간에 입체적인 것들의 작업을 설치하는 것을 모두 조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올해 '조각도시서울'의 예술감독으로서 참여하시게 됐습니다. 이번에 작업하신 '조각도시서울'은 어떤 프로젝트인지 궁금합니다.

서울특별시에서 2024년도에 '조각도시서울'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저는 공모를 통해 같은 해 말 감독으로 선발이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 전체를 ‘지붕 없는 야외 미술관’으로 만든다는 컨셉으로 광화문광장, 세종문화회관, 송현공원 등 공공장소와 서울 곳곳을 무대로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마주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어요. 

올 봄에는 풍납토성 내 오래된 구옥에 야외 조각을 설치했고, 상인·주민과 함께 ‘풍납조각 페스티벌’을 열었습니다. 9월에는 '한강 뚝섬공원'에 약 100여점의 조각작품을 설치한 메인 프로젝트 <생동의 서울: 나비의 날개짓>을 선보였고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키듯이 문화예술로 전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획했습니다. 그렇게 서울의 중심을 지나는 한강에서 시민들과 해외 관광객들에게 예술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보는 실험을 하고 있죠. 실제로 관람하는 시민이나 해외 관광객분들을 인터뷰 해보니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또한 ‘서울조각상’이라는 조각공모전도 함께 진행했는데요, 젊은 작가부터 60대 작가까지 총 14인을 선정해, 약 5m 규모의 대형 조각을 제작할 수 있도록 1인당 약 2,500만 원을 지원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뚝섬 전시에 함께 설치되었고, 작가에게는 흔치 않은 야외 대형 조각 제작 기회이자, 신진 작가에게는 도약의 발판, 중견 작가에게는 경제적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어요. 전시가 끝난 뒤에도 작품은 작가가 소유하게 되므로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장기적인 지원 프로그램이라 생각합니다.






서울특별시 <조각도시서울> 예술감독 현장사진

 



2008년부터 17년 동안, 조각작업을 하셨고 이번에 좋은 기회로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계원예술고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디자인, 서양화, 동양화, 조소, 네 가지 전공을 다 해봤어요. 그렇게 1년 동안 다 해보고 정한 게 조소였습니다. 그러니까 조각이죠. 저는 입체적인 게 제일 좋았고 17살의 나이에 조각가로서의 길을 밟으며 지금까지 쭉 해오고 있네요.(웃음)

사실은 예술가의 길에는 힘든 점이 있죠. 안정적인 직장에서 급여가 매달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오랫동안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보람이 더 큽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는 2008년에 첫 개인전을 하시고 벌써 43회 째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데뷔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이 또 궁금해지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극복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008년도에 첫 번째 개인전을 하고서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매년 신작, 새로운 작품으로 개인전을 해야겠다' 하고요. 그렇게 마음을 먹었고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켰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쭉 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재료비도 많이 들어갔고 전시를 한다고 해서 작품이 다 팔리는 건 아니기에 그러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2회, 3회 개인전을 하면서 당시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우수작가로 선발이 돼서 문예진흥기금을 수여받는 작가로 선정되었어요. 지원과 함께 서울문화재단과 경기문화재단의 문예지원금도 받고, 또 공모전에서 우수작가로 선정되어 초반 개인전을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이후에는 작가 개인활동을 하다 보니 갤러리에서 초대를 받게 되고, 또 계속 열심히 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의 길에 오게 됐습니다.


 

이후창 작가님 하면 사실 떠올릴 수 있는 핵심적인 것들이 빛, 그리고 유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유리를 사용해서 조각을 하신 면이 되게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유리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가 창문을 보면 투명하잖아요. 그런데 때로는 빛이 들어오면서 굴절되거나 왜곡되기도 하죠. 또 그런 빛은 만질 수 없어요. 그런 점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사람의 겉과 속을 살피며 인간관계 속 다중적인 면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20대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은 왜 이렇게 다중적일까, 자주 생각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은 산 중턱, 동네에서 한참 떨어진 끝자락에 있었어요. 부모님이 사슴목장을 하셔서 스무 살 무렵까지 집 뒤뜰에 꽃사슴이 있었고, 많을 땐 50마리까지도 있었죠. 목장을 지키는 개들, 오리, 거위, 닭 같은 동물도 많았고요. 그래서 도시에서 자란 친구들과는 달리, 저는 자연 속에서 사계절의 빛, 공기 냄새, 노을 색 같은 걸 매일 느끼며 살았어요. 자연은 거짓이 없잖아요. 강아지는 상대가 싫다고 억지로 꼬리를 흔들지 않죠. 그런 솔직함이 자연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반면 사람은 양면성이 있어요. 우리가 악수하며 인사를 해도 그 사람의 속내는 잘 모르잖아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봐야 알죠. 그게 유리와 닮았다고 느꼈어요. 유리는 아주 연약해서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지죠. 그런데 또 완벽한 반사로 자신을 숨기기도 하고, 공간이나 타인을 비출 때 표면만 보면 스테인리스인지 유리인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어요.

그런 성질들이 사람과 닮았다고 생각했고, 작업을 통해 그런 유사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겉으론 만물의 영장처럼 강해 보이는 인간도 유리처럼 쉽게 깨질 수 있다는 점, 또 빛의 반사와 굴절을 통해 착시를 일으키며 어떤 인사이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에 매력을 느꼈고, 지금도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개인전과 작품 중 작가님에게 가장 의미 있거나,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 전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세 가지가 떠오르네요. 우선 2014년, 홍익대학교 조소과 박사학위 졸업 전시를 했어요. 당시 논문을 준비하면서 지금처럼 설치적인 작업, 공간의 빛이나 반사를 활용해 공간을 연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주로 인간 형상을 다루는 작업이 많았는데, 이 전시를 계기로 추상적인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하나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는 2021년의 결혼식입니다. 조금 늦은 나이에 했던 결혼식이었는데, 갤러리에서 개인전과 결혼식을 동시에 열었어요. 실내는 전시 공간으로 연출하고, 야외에는 작품을 설치해 하객들과 함께 예술적인 결혼식을 즐겼죠. 주례는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조각하신 원로 조각가 김영원 선생님께서 맡아주셨고, 주례 단상도 제 작품으로 꾸몄습니다. 결혼식 전체를 하나의 전시처럼 기획하고 동선을 짠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에요. 예술가로 살아온 길에 대해 다시 한번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 2023년 말부터 2024년 초까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전시가 기억에 남습니다. 공모 작가로 선정되어 참여했는데, 이곳은 조선시대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한 장소로, 국가가 운영하는 성지이기도 하죠. 굉장히 상징적이고 무게감 있는 공간이라, 그 역사성과 제 작업을 어떻게 연결할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공간의 맥락을 중요하게 여긴 만큼, 약 2년간 준비 끝에 전시를 완성할 수 있었고, 제게 큰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빛나는 빛, 빛나는 삶, 빛나는 우리> 이후창 작가의 결혼식이 열린 개인전 전시 광경. 2021년

 



2024년 1월, <형상과 현상 - 성스러움에 대하여> 전시에서 '피에타'나 '반가사유상', '12지신 오벨리스크' 등 종교적 형상을 다룬 흔적이 인상적입니다. 예술적 탐구를 인간의 내면에서 나아가 종교적 의미까지 확장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정확히는 2023년 12월 31일에 전시를 열었고, 몇 시간 후면 2024년이 되는 시점이었어요. 전시 제목을 《형상과 현상–성스러움에 대하여》로 정한 이유는, 종교 여부를 떠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형상을 통해 발현되는 현상들, 즉 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보게 되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죠. 예를 들어, 토테미즘처럼 어떤 바위를 신성하게 여긴다고 할 때, 그 바위의 형상 자체를 숭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신화나 전승을 통해 형성된 인식일 수도 있잖아요. 아무 정보 없이 바라보는 것과, 의미를 학습한 뒤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를 겁니다.

저는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동서양에서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오브제를 작업적으로 해석해보고 싶었습니다. 동양에서는 불교에서 착안해 ‘우담바라’와 ‘반가사유상’을 만들었어요.

우담바라는 불교에서 수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신성한 꽃인데, 과학적으로는 잠자리 알이나 곰팡이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경이로운 존재로 느껴지죠.

‘반가사유상’은 표면에 균열을 내고 그 틈에서 빛이 발산되도록 했어요. 이는 형상 자체보다 ‘그 너머’를 바라보자는 메시지예요. 우리가 기도할 때 조형물이 아닌, 그 너머의 존재를 향하듯이요.

서양의 상징으로는 바티칸의 ‘피에타 상’을 차용했어요. 작품이 주는 양가적인 감정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어두운 전시장 한가운데에 단상을 설치하고, 회전, 빛의 반사, 음악을 활용해 몰입을 유도했습니다. 실제로 수녀님부터 일반 관람객까지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 감정선이 제가 의도한 바와 맞닿아 있었죠.

종교적인 시선에서 보면, 피에타 속 예수는 죽음을 맞이했지만 곧 부활할 존재로 읽히고, 유리로 만든 예수는 빛을 발산하며 반면 마리아는 흑연으로 만들어 빛을 흡수하게 했어요. 그래서 마리아는 그림자처럼, 예수는 빛으로 보입니다.

비종교적인 시선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 즉 희생과 사랑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어요. 이처럼 양쪽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이 작업은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처럼, 결국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철학과 연결돼요.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결국 내 안의 문제라는 것. 그걸 깨닫게 해주는 매체로 유리는 매우 적합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피에타상>에서는 흑연과 황금 유리를, <12지신 오벨리스크>에서는 스테인리스와 유리를 결합해 일루전을 표현했어요.

멀리서 보면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색이 변화하며 형태가 드러나죠. 마치 카멜레온의 보호색처럼요. 이를 통해 ‘본질은 동일하지만,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 그런 시도가 제 작업의 주요 개념이기도 합니다.


 


이후창 작가의 작품 <형상과 현상> 피에타, 우담바라, 십이지신 오벨리스크, 2023년

 



조각가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요?

본인이 이 작업을 왜 하는지, 예술가를 왜 하는지를 인지하는게 제일 중요해요. 본인이 미술을 왜 좋아했는지를 아는 것이죠. 미술 대학을 나오더라도 모두가 작가를 하지는 않아요. 열에 한 명 정도가 작가의 길로 가게 되고, 그 사람들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찾는 과정을 겪습니다. 어쨌든 작가 생활을 쭉 지속할 수 있는 힘에 대해선, 내가 이 작업을 왜 하는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 가치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뭐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예술가를 한다 이렇게는 안 맞는 거죠. 그러니까 돈이라는 것은 후순위인 것이고 내가 이 예술 창작 활동을 왜 하는지, 어떤 의미로 이걸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이 사회의 예술인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려는지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각가는 예술직종인 만큼 안정적인 수익이 불투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수익적인 면을 해결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대학원 석사와 박사 졸업 이후 미술대학교에서 강의를 병행하고 있으며, 개인전도 지속적으로 열고 있습니다. 또 미술 시장에서는 아트페어라는 플랫폼이 있는데요. 국내외 아트페어, 예를 들면 키아프(Kiaf) 같은 곳에서 작품이 판매되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입니다. 조각가로서 공공장소에 야외작품을 설치하는 경우가 있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기도 하죠.

초창기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등에서 창작지원금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 제도는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꾸준히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온 우수 작가를 선정해주는 공모 방식이에요. 다만, 신진 작가 시기에만 받을 수 있는 한시적인 지원입니다.

이후에는 초대 개인전이나 아트페어 참여를 통해 작품이 판매되는데, 조각은 평면 작업과는 다르게 유통이 쉽지 않습니다. 한국은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이고, 이사도 잦다 보니 입체 조형물을 들이기엔 공간 제약이 많죠. 국제 전시도 중요한 수익 경로입니다. 저는 2018년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9일간 현지에서 설치와 오프닝을 진행했어요. 그 외에도 아트 마이애미, 아트 팜스프링 등 다양한 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습니다. 이런 국제 무대에서도 작품이 판매되며, 해외에도 조각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 분명 존재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작가가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느냐입니다. 갤러리나 미술관, 수집가들이 작가의 작업에서 일관된 세계관과 차별성을 느껴야 초대나 거래로 이어지거든요. 그래서 꾸준히 자신만의 색깔을 지켜나가는 것이, 작가에게는 수익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예술작업 뿐만 아니라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계십니다. 작업실에서 벗어나 대학교에서 교육자로서의 길을 가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선 대학 강의는 수익적인 면으로 나가는 건 전혀 아닙니다. 제가 2010년도부터 대학강의를 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예술고등학교를 다니고, 그러면서 거의 평생 미술을 해왔고, 그래서인지 대학교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굉장히 보람되고 영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국민대학교에서 외래 교수를 하고 있는데, 조소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 과거에 제가 예술가를 꿈꿨던 그때도 생각이 나요. 그 친구들이 꿈이 많을 시기잖아요. 그때 사실 멘토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좋은 영향을 받고 꿈을 키울 수도 있게 됩니다. 미술이나 예술 분야가 특히 더 그래요. 그래서 재능을 복돋아줄 수 있다는 면에서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예술가라면 슬럼프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긴 창작 활동 기간 중 슬럼프나 작품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신 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있다면 그러한 위기를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창작활동을 하면서 회의감을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예술고등학교 가서 쭉 지금까지 활동을 해오면서 재미를 느꼈거든요. 문제는 '나'의 이야기를 다듬어가는 게 어려운 거죠. 예를 들어서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 '김창열' 화백님 같은 경우엔 평생 물방울을 그리셨는데 그것이 하나의 온전한 아이덴티티가 됐어요. 어렵지만, 작가가 평생 자기의 작업을 하면서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구축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도 하나의 작업을 만들고 개인전을 하면서 발표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지만 다듬어가는 과정에선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면의 문제니까 앞서 말씀드린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 이야기처럼 내 마음을 다스리면 된다고 생각해요.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위해 다듬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과정 자체를 재밌게 느끼기도 하거든요. '앞으로 나의 작품이 어떻게 될까' 하고 상상하며 느끼는 기대감도 있고요.



 

이후창 작가의 작품 2024년

 



작가님께선 <호텔 델루나>와 <달의연인 - 보보경심 려>, <손 the guest>, <뒤틀린 집> 등 영화와 드라마에서 아트디렉터로서 참여하신 이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순수조각가에서 머무르지 않고 아트 디렉터로서의 길을 병행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0년경부터 영화·드라마 프로젝트에 참여해왔습니다. 시작은 드라마 나쁜 남자에서 유리 가면을 제작한 것이었고, 이후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서는 배우 이준기의 가면을 디자인하고 제작까지 총괄했죠. 의상과 연출, 대본에 맞춰 네 가지 버전의 가면을 만들었고, 단체 신에서는 약 100여 개의 가면도 함께 작업했습니다.

<호텔 델루나>에서는 아이유 배우의 ‘월령수’ 공간과 로비의 대형 조형물을 맡았습니다. ‘델루나 호텔’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머무는 공간이기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몽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저는 ‘월령수’를 동양적인 개념과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 사상에 빗대어, 도깨비불처럼 빛이 은은하게 퍼지는 공간으로 디자인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그 공간이 브라운관을 통해 구현되는 걸 보며 창작자로서 또 다른 보람을 느꼈죠.

<손 the guest>에서는 한국형 엑소시즘 드라마라는 장르에 맞춰, 최고 악령의 얼굴을 마스크로 제작했습니다. 분장으로는 한계가 있어 조형을 통해 극대화된 이미지를 구현했죠. 영화 뒤틀린 집에서도 ‘기괴한 집’이라는 컨셉에 맞춰 공간을 조형적으로 설계했습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대본과 공간을 분석하고, 시각예술로 풀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늘 흥미롭습니다. 가면이든 공간이든, 각 작품에 어울리는 비주얼을 아트 디렉팅하는 것이 제 개인전과는 또 다른 창작의 재미를 줍니다. 내년에는 새로운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15년 전만 해도 순수미술 작가가 영화나 드라마처럼 대중적인 콘텐츠에 참여하는 것을 상업적이라며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저는 이 또한 예술의 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각가이자 가면 디자이너, 비주얼 아트 디렉터, 그리고 서울시 예술감독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곳곳이나 미디어 속에서도 감성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서울 전역을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들고자 하는 삶의 비전을 품게 되었고, 다양한 영역에서의 창작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작가님께서 참여하신 프로젝트에서 가면을 디자인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조각가로서 조각이 아닌 가면디자인에 도전하신 특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의도적으로 마스크(가면)를 선택한 건 아닙니다. 촬영감독, 총감독이 있고 촬영감독, 음악감독, 조명감독, 미술감독님이 상의해도 그 공간이나 어떤 중요한 미장센이 해결이 안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 부분을 아트 디렉터 또는 비주얼 아트 디렉터가 맡아서 하는 거죠. 소위 이 씬을 위해서 최상의 상황이 필요한데 이걸 누군가가 해결해줘야 하는 그런 지점이 있는 거예요.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의 '이준기' 배우의 가면은 그 인물에게 아픔과 상처가 있기 때문에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는 연출이 필요했습니다. 슬프면서도 동시에 시각적으로 멋이 있어야 해서 참 어려운 지점이었습니다. 의상 디자이너는 의상만 디자인하기 때문에 그 영역까지는 작업할 수 없었죠. 때문에 해소가 안되는 부분을 제가 맡아서 했던 것이었고 <나쁜 남자> '김남길' 배우의 유리 마스크 경우도 가면이 중요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비주얼 아트디렉터가 필요했던 거죠. 그런 개념으로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같은 영상매체에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선 적잖은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눈으로 보이게 하는 색감과 카메라를 통해서 보이게 하는 색의 느낌이 달랐을 것 같은데 이러한 부분에서 어려움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현장을 갑니다. 직접 가서 작품을 이렇게 놓고 저렇게 놓으면서 직접 설치를 해요. 프로젝트마다 좀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호텔 델루나>는 실제 세트장에 가서 여러차례 세팅도 하고 외부에서 색이 변하는지와 촬영을 했을 때 변하는지도 체크를 했어요. 송혜교, 박보검 주연의 <남자친구>라는 작품에서도 특정 씬의 공간을 디자인할 때도 빛이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빛의 간섭이 있는지 등을 확인했습니다. 만약 간섭이 있다면 조도를 낮추는 등의 행동을 취하죠. 그래서 카메라에서 보이는 시각적인 부분은 현장에서 촬영감독님과 상의를 하고요. 조명같은 부분은 서로 소통을 하면서 공간을 세팅하는 편입니다.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호텔 델루나> 현장사진

 



최근 AI의 등장과 함께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도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시는 지, 그리고 작가님께서 활동하시는 기간 동안 조각 시장이나 미술 산업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AI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미술계에도 AI를 활용한 창작을 하는, 이른바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다만 아직은 미술계 전체가 AI에 대해 염려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는 과도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상황이 과거 2G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되던 시기와 비슷하다고 느껴요. 처음에는 낯설고 불안했지만, 결국 스마트폰은 우리 삶의 필수 도구가 되었죠. AI도 그렇게 하나의 툴로 정착될 거라고 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창작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느냐, 그 중심이 더 중요해질 것 같아요. 조각계에서도 기술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3D 프린터와 스캐너의 발전이 두드러졌어요. 아직 보편화되진 않았지만, 돌을 일일이 깎지 않고도 석재 느낌의 프린트가 가능하고, 금속 역시 출력 후 주물처럼 구현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죠. 물론 이 기술들도 수요와 맞물려야 보급이 이뤄지겠지만, 결국 하나의 도구로 자리를 잡을 거라고 봐요. 는 이런 변화들을 걱정하기보단, 내 작업의 정체성과 중심만 확실하다면 AI든 3D 프린터든 모두 창작을 도와주는 도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기획하고, 전시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큰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예술가가 축복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분들도 취미 활동이 있잖아요. 취미로 낚시를 한다거나 운동을 하고, 산에 간다거나 주말에 바다에 가는 그런 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워라벨이라고 해서 일과 지금 여가 시간을 적절히 하고자 하죠.

하지만 저는 예술가로서 그런 것들을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작업 자체가 직업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휴식이기도 하니까요. 창작하는 것도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하지 않고요.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잖아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만약에 모래성을 쌓기 싫은 사람한테 모래성을 쌓으라고 하면 과제 하듯이 쌓아야 하니까 숙제가 됩니다. 반면 아이들은 하는 게 좋으니까 해맑게 웃으면서 즐기는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도 창작 활동이 제 직업이기도 하면서 약간의 여가활동으로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물론 힘든 부분도 있지만 예술가로서는 특별히 워라벨이라는 개념보다는 그냥 다 즐기는 편입니다. 그래서 작업활동을 즐기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2022년부터 23년 초까지 진행되었던 개인전 <용암의 불씨처럼>에서 작가님께서는 사소한 불씨가 지닌 잠재된 에너지의 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작가님과 같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는 불씨같은 청년들이 있을 텐데요. 그러한 어린 예술가들에게 조언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신이 이 일을 굉장히 행복해하고 관심이 있고 그러는 이유는 뭘까, 그래서 이것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를 생각하는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에는 미술을 해서 돈을 많이 버는지, 아니면 취업은 잘 되는지가 공통의 관심사잖아요. 물론 그 가치도 중요하겠지만 그걸 떠나서 어쨌든 본인이 행복해야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을 수 있어요. 억지로 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이 일에 맞는지, 이걸 하면서 뭐가 좋은지. 이런 것들을 찾는 게 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건 남이 찾아줄 수 없는 거예요. 때문에 스스로 계속해서 도전해보고 찾아보고 하면서 가지치기처럼 길을 찾아가는 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 그렇게 쭉 하면, 그게 절실하고 본인이 그 길이 맞다는 확신이 든다면,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님께서 그리시는 앞으로의 작가님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저는 예술가로서 지금 하고 있는 저의 작업들을 좀더 다듬으려고 해요. 우리가 다 아는 '빈센트 반 고흐'는 그 사람 하면 딱 생각나는 작품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미술사의 어떤 흔적으로 남는 것이니까요. 그처럼 저도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이 저만의 명확한 정체성으로 만들어내고 이 시대가 지나고 났을 때 남고 싶은 게 예술가로서 앞으로의 꿈입니다.

그리고 현재 하고있는 “영화, 드라마의 아트디렉터”나 “서울시 예술감독”같은 기획자로서의 프로젝트들도 제가 예술가이기 때문에 이론가 분들과는 또 다른 창작자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생생한 감각들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즐겁게 해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