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탐방
[아티(ATI) 기업탐방] 더레퍼런스
책에 대한 애정과 고집이 일궈낸 사색과 연결의 공간, 더레퍼런스
더레퍼런스 김정은 대표
덕후 전성시대.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을 일컫는 말인 ‘덕후’는 요즘 시대에 심상치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이돌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케이팝 덕후, 춤을 사랑하는 댄스 덕후, 옷을 사랑하는 패션 덕후 등 이들은
SNS 플랫폼에서 소위 자신의 ‘덕력’ 즉 얼마나 자신이 해당 분야를 좋아하는지를 드러내며 큰 관심을 얻고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 예술 서적에 대한 깊은 ‘덕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예술 서적 출판 업계에서 16년째 몸 담고 있는 ‘더레퍼런스’의 김정은 대표이다.
김정은 대표는 예술 서적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어린 나이에 출판사를 창업한 후 독립 서점도 병행하여 운영하고 있다.
하나의 대상에 대한 사랑이 결국 한 사람의 꿈과 인생을 인도한 것이다. 당신이 애정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대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김정은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애정하는 대상을 일로 만들기까지의 생생한 과정과 비결을 들어보자.

예술 서적 출판 업계에서 16년째 몸 담고 있는 ‘더레퍼런스’의 김정은 대표.
책에 대한 사랑과 고집으로 출판사는 물론, 독립 서점까지 병행하여 운영 중이다.
좋아하는 대상을 일로 만들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겪었을까?
'예술과 전시가 있는 서점'이라는 '더레퍼런스'의 모토가 인상적이에요. '더레퍼런스'는 정확히 어떤 공간인가요?
'더레퍼런스'는 제가 창업한 '이안북스'라는 독립 출판사에서 느꼈던 한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어요. 제가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박사를 막 시작하는 즈음인 29살 때, '이안북스'를 설립하고 학업과 병행하며 반연간지로 나오는 아시아 예술 사진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서양 예술사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 미술사를 바라보는 게 의문으로 다가왔고, 서양인의 관점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에서 보는 잡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일본의 포일 출판사와 공동 출판하여 한국어, 일어, 영어 3개 국어가 들어간 최초의 인터내셔널 매거진을 만들었어요. 포일 출판사는 널리 알려진 출판사라 서점 유통에 문제가 없었지만, ‘이안북스’의 잡지는 교보문고 같은 몇몇 대형서점에 유통되어도 한 달 안에 회수됐어요. 열심히 만들어도 유통이 안 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죠. 또한 당시 대부분의 잡지는 월간지 중심이었기에 아무리 책을 잘 만들어도 그 책을 보여줄 수 있는 서점이 없었습니다. 결국 예술 서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특화된 서점이 필요했고 오피스 겸 라운지 컨셉의 공간을 만들고자 한 게 지금의 '더레퍼런스'가 되었죠.

예술 서적 전문 서점 ‘더레퍼런스’는 오피스 겸 라운지 컨셉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한쪽에서는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고, 한쪽에는 예술 서적과 테이블이 감각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테이블에서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더레퍼런스'는 국내 유명 작가의 출판물뿐만 아니라 미술관 도록, 큐레이터가 선정한 동양권의 아티스트 북 등 다양한 서적을 취급하더라고요. 결국 서점은 큐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출판자와 독자 사이를 이어주는 것인데, 이때 '더레퍼런스'만의 큐레이션 기준이 있을까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컨템포러리 아트', '뉴미디어', 그리고 '아시아'에요. 2018년에 처음 '더레퍼런스 서울'을 개관했을 때 '아시아 아트북 라이브러리'라는 기획전을 첫 전시로 열었어요. 아시아 5개국의 큐레이터나 에디터들에게 책을 추천받아서 전시했는데요, 그때 같은 아시아라도 각 국가나 도시마다 책의 성질, 콘텐츠, 나아가 정체성이 굉장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결국 서점들 속에서 제가 조금 더 지키고 싶은 것은,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지닌 한국 작가와 한국 예술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일이에요. 소개하지 않고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으면 계속 밀리니까요. 그래서 '더레퍼런스'는 한국 예술 관련 전문서들을 많이 취급하고, 다음으로 아시아 작가의 책들이 좀 더 많다고 볼 수 있죠.
또한 서울시립미술관에 위치한 '더레퍼런스 SeMA 서소문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강화된 부분이 전시 도록이에요. 4~5년 전만 해도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내부에 서점이 없었고, 전시 도록은 비매품으로 소위 판촉물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러나 전시 도록도 어떻게 보면 연구물이자 아카이브잖아요. '더레퍼런스'가 이러한 전시 도록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형태로 유통하면서 예술 애호가들의 연구나 공부를 돕는 거죠. 무엇보다 전시 도록이 한영으로 되어 있어서 한국에서의 전시 정보를 찾는 외국 독자들에게 반응이 좋습니다.

'더레퍼런스 서울'의 개관 기획 전시 '아시아 아트북 라이브러리'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 2층에 위치한 '더레퍼런스 SeMA 서소문점'의 모습
보통 서점이라고 하면 서적을 판매하는 일만 생각하는데, '더레퍼런스'는 서적 판매뿐만 아니라 책과 연계된 전시,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더라고요. 혹시 서적 판매에서 그치지 않고 이런 콘텐츠를 기획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여러 협업자의 도움이 필요해요. 이것을 책으로만 보여주기에는 그 밀도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자체적인 프로그램의 운영을 통해 이를 개선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책과 연계된 전시, 아티스트 토크, 전시와 프로그램의 결합 등 사람들이 책을 좀 더 다양하게 경험하도록 만들고, 여러 협업자를 소개한다면 예술 출판 분야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일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특히 서점에서 전시를 연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렇다면 전시와 책의 연관성이 얼마나 존재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저희가 상반기와 하반기로 전시의 성향을 구분해요. 보통 상반기에는 책과 연계된 프로그램에 집중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아시아 아트북 라이브러리’나 인터내셔널 교류 협력전의 형태로 외국에서 출간된 도서 전시를 열기도 합니다. 올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사진 아트 페어인 ‘파리 포토 아파처’의 포토북 공모전에 선정된 책을 저희 공간에서 전시했어요. 해외에서 만든 아트북이나 포토북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기가 쉽지 않기에 이를 전시화해서 기획한 것이죠. 또한 아티스트 북 세미나라는 행사를 작년과 연이어 올해 역시 개최했는데요, 창작을 위해 수반되는 작업 과정을 담은 책을 '리서치북'이라는 형태로 상정하여 프로그램과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하반기에는 책보다 사진과 뉴미디어 아트에 국한해서 매체 중심의 전시를 여는 편이에요.
일반 대안 공간이나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보다는 조금 더 유연해지고 싶습니다. '더레퍼런스'는 미술관이 아니기에 담론 창출보다 일종의 에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예술이 작동할 때 필요한 운영의 생태계가 있는데, 여기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은 것이죠. 기관과 현실에서 활동하는 현장의 목소리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서적 판매뿐만 아니라 전시도 개최하는 ‘더레퍼런스’. 전시 공간인 지하 1층에서는 전시와 더불어 아티스트 토크, 세미나, 심포지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더레퍼런스'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책을 통해 사람을 연결해 주는 공간으로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요즘같이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 시대에, 대표님이 생각하는 ‘서점’이라는 공간이 지녀야 할 가치나 제시해야 할 방향성이 있을까요?
'매개자'의 역할에 충실해지는 것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람들이 예술 서점을 단순히 예술 서적을 판매하는 '스토어(Store)'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에 있어요. 저는 저희 내부 스태프한테 "우리는 아트북 큐레이터야"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저희가 서가를 관리하는 사서의 역할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책을 공감각적으로 경험하게끔 만드는 기획자의 역할도 있기 때문이죠.
또한 경험의 비중이 책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예술 관련 도서만큼은 오히려 그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예술 서적은 단순한 정보 전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감각화 되어 있어요. 따라서 인터넷상에서 온전히 느끼기 힘들기에 더 매력적인 것이죠. 이러한 책이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게끔 보여주는 역할이 너무 필요하다는 걸 느꼈고, 책을 다시 꺼내 재구성하고 큐레이션 하여 하나의 유통 시스템을 만들어 줄 수 있을 때 서점이 중요하게 기능하는 것 같습니다.
책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대표님이 학부 시절 삼성 출판사에서 인턴을 하시고 유학을 떠나서도 사서로 근무하셨다고 들었어요.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오래 간다는 것이죠. 결국 디지털 형태로 남아있는 자료는 어딘가에 존재하다가도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거든요. 정보를 누군가 아주 열심히 따로 남겨놓지 않는 이상 사이트 자체가 없어지면 찾을 길이 없죠. 하지만 책은 물리적 형태가 있는 물건으로 남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영구적인 시간을 버텨내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책이 갖고 있는 물성의 힘은 어떤 디지털화된 데이터의 힘보다 분명히 강한 지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모든 정보를 다 책으로 만드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고, 정말 필요한 책들이 책으로서 존재하며 이를 계속 지켜나갈 때 그 진가가 훗날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아티스트 북이 이런 측면에서 매력적이죠. 단순히 카탈로그 수준을 넘어서 작품으로서 보기도 하고 작가의 작품을 보존하고 정리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니까요.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인 책으로 결국 하나의 브랜드를 만드신 건데, 창업하는 과정에서 대표님이 기존의 다른 서점과 차별화를 두려고 했던 지점은 무엇일까요?
전시가 있는 저희 같은 서점은 많아요. 그러나 대부분은 서점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라 카페나 갤러리가 운영의 중심이 되어 책이 소외되는 경우가 많아요. '더레퍼런스'는 책의 매출을 올리고 생산성을 일으키면서 전시가 이를 받쳐주어 서로 상생할 수 있게끔 하는 모델을 만드는 겁니다. 저희는 공간 내에서 커피나 티와 같은 엑스트라를 팔지 않거든요. 언제나 우선시되는 상품은 '책'인 거죠. 물론 책을 최우선으로 두고 운영하는 다른 소형 독립 서점들도 많지만, 이전까지는 많은 서점들이 '카페나 바 겸 서점'의 형태로 운영하여 책을 한켠에 두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책을 더 중심에 놓으려고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아요. 일종의 고집 같은 거죠 (웃음).

여느 서점과 달리 커피나 티와 같은 엑스트라를 판매하지 않고, '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더레퍼런스'.
김정은 대표는 책을 운영의 중심에 두는 것이 쉽지는 않으며 일종의 고집이라고 말한다.
'더레퍼런스'에서 책을 읽으며 느낀 감상을 공유하고 토론할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토론의 장으로서 '더레퍼런스'가 가지고 있는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책은 보통 만들면 배포하잖아요. 여러 곳에 뿌려진 후 독자들이 각자 알아서 소비하는 느낌이 강한데, 공간의 매력은 독자들의 생각과 의견을 다시 한번 모아주는 힘에 있죠. 책과 공간이라는 두 개의 영역을 동시에 경험하다 보니 각각 가지고 있는 장점을 확연히 느꼈어요. 책은 유통 주체에 따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장소까지 이를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 '더레퍼런스'와 같은 공간은 실질적인 만남을 성사하는 매개 공간이 된다는 장점이 있죠.

토론의 장(아고라)로서 기능하는 '더레퍼런스'는 책과 사람들 간의 실질적인 만남을 성사하는 매개의 공간을 담당한다.
독립 출판한 서적을 '더레퍼런스'에 입고한 작가분이 원활한 판매 정산 관리에 만족스러워하셨다는 에피소드를 봤습니다. 영리보다 작가의 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가치관이 느껴져 저까지 기분이 좋았는데요, 혹시 '더레퍼런스'를 운영하며 대표님이 보람을 느꼈던 다른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6699프레스'라는 독립 출판사에서 출간했던 "1-14"라는 책이 있어요. 저희 서점에서 그 책을 판매하여 매진됐다는 코멘트를 들었을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예술 전문 출판사로서 책을 많이 출간하는 곳은 손에 꼽혀요. 열화당, 현실문화, 워크룸, 미디어버스와 같은 곳이 있는데, 이곳의 관계자들이 대형 서점에서 책이 팔리는 것보다 '더레퍼런스'에서 책이 더 많이 팔린다는 말씀을 해주세요. 그분들이 직접 책의 판매 수요를 느끼시는 거죠. 무엇보다 책이 한권이 됐든 두 권이 됐든 판매가 이루어지면 분기별로 정산을 해드리는데, 지속적으로 판매 유지를 할 수 있게끔 내부 스태프들이 책임감 있게 관리하고 시스템이 잘 정비됐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만족도가 큰 편입니다.
모든 것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시대에 '더레퍼런스'처럼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디어에 과다 노출되면서 청년들은 이 시간을 많이 뺏기고 있어요. 청년들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시도해 보면 좋을 방법이 있을까요?
사유하고 사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 읽기'에요. 물론 저도 업무 외 개인 생활에서 가장 많이 노출된 시간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활동이에요. 그러나 그 와중에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할 때 저는 책을 잡아요. 책을 읽으면 생각의 흐름이 바뀌고 침잠해 간다는 기분을 느껴요. 초반에는 책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기에 조금 가벼운 책으로 시작한 후 그 시간대를 조금씩 늘려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유튜브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독서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에서 언급했던 키워드가 있다면, 저는 관련된 책을 찾아서 바로 읽기 시작해요. 그다음 단계는 글쓰기입니다. 장문이 아니더라도 노트와 같은 형태의 짧은 글을 쓰는 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일기 같은 편안한 다이어리 작성이 저에게는 사색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애정하는 것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하나의 브랜드를 만드신 대표님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실 때 좋아하는 것을 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요?
저는 역량이 아니라 고집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이긴 건 단 하나, 시간이거든요. 가끔 지인분들을 만나서 출판 일 시작한 지 16년 차라고 말하면 다들 놀라세요. 결국 그 원동력은 시간을 이겨낸 힘, 즉 고집과 끈질김이죠. 일을 잘해서 정말 대단한 책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집스럽게 놓지 않은 건 확실해요.
저는 제 사업자 등록증이 개인 사업자로 되어 있어요. '이안북스'를 만들었던 2007년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 사업자 등록증을 갱신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2007'이라는 숫자가 저한테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와서 그런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평생 이 일을 해도 30~40년 정도가 최대인데, 그러면 이 회사가 100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역시 고민합니다. 몇 백 년 된 출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외국과 비교한다면 한국은 아직 출판 시장이 유아기에서 막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기에 오랜 시간 동안 문화적인 자존심을 지키고 계승하며, 처음 브랜드가 가졌던 소신을 꾸준히 사람들에게 경험하게끔 만드는 것이 진정한 브랜딩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대표가 이긴 건 단 하나, 시간이라고 한다. 기나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결국 고집과 끈질김이라고 말하며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제 주변에도 예술 관련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은 친구가 많이 있더라고요. 혹시 예술 출판업계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가져야 할 역량이나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지금 세대에게는 출판 분야가 매력적이고 멋있어 보일 수 있으나, 여전히 영세하고 어려운 분야입니다. 개인의 소신 없이는 오래 지속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분야는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해요. 보존하고 기록하는 게 중요한 분야라, 당장 알아주지 않더라도 공든 탑 쌓듯 그 시간을 공고하게 견뎌야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지가 되고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 오거든요.
무엇보다 이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면 일단 직접 책을 만들어 보세요. 그 경험을 통해 출판이라는 게 본인한테 정말 맞는지, 또 맞는다면 뭘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있거든요. 지금 대학생이라면 어딘가에 취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책을 제작해 보고 여기에 돈을 써보는 경험이 정말 중요해요. 저도 처음에 잡지 만들었을 때 3천 부 찍고 2천 부 정도가 창고에 그대로 쌓였던 적이 있어요. 결국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고,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를 하고 싶은지를 질문하며 마음가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량이란 건 실제로 해보면 본인이 알 수 있고, 처음부터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어요. 장단점만 있을 뿐이죠. 그래서 더욱 직접 해보고 지금 당장 풀어야 할 숙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어릴 때 실패할수록 더 좋습니다. 커서 실패하면 감당해야 할 몫이 큰데, 어릴 때 실패하면 그것에 대해 누가 질타하지 않아요. 젊을 때 사서 고생하라는 어른들 말이 정말 틀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