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탐방
[아티(ATI) 기업탐방] 제주도립미술관
자연과 소통의 장이 어우러지는 문화예술기관,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이나연 관장
제주도립미술관은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정체성을 품은 지역 대표 미술관입니다.
특히 제주 비엔날레, 제주 프로젝트 등 지역성과 국제성을 연계한 기획 전시 및 문화 행사를 통해
제주 미술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2020년 역대 최연소 신임 관장으로 취임하신 이나연 관장님께 제주도립미술관의 프로젝트를 비롯해
공립 미술관의 운영방식과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제주도립미술관 이나연 관장
제주도립미술관은 2009년 개관 이래 제주 미술 문화 발전에 기여하며 지역 대표 미술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관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드려요.
제주도립미술관은 말 그대로 제주특별자치도청 산하의 공립 미술관입니다. 제주 예술인들의 염원으로 지어진 미술관이기 때문에 제주 예술 문화 발전과 연구를 중심으로 작품을 수집, 관리, 전시하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섬인 만큼, 제주도립미술관도 제주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하며 지어진 것 같습니다. 미술관이 개관한 2009년에 제18회 한국건축문화대상의 우수상에 선정되기도 했죠. 이 외에도 미술관에 제주의 정서를 녹여내고자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주도립미술관 건축의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와 더불어 도시와도 가깝다는 것입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공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합니다. 한라산을 가로질러 서귀포로 넘어가는 도로인 천백(1100)도로 입구에 있죠. 천백도로 초입 주변에는 다른 랜드마크나 건물이 없어요. 즉, 제주도립미술관은 자연으로 둘러싸인 미술관이면서 공항, 시내와도 아주 가깝습니다. 덕분에 제주 도민들이 접근하기에도 아주 편리하고요. 건축물도 물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야외 정원도 매우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고, 미술관에서 한라산도 볼 수 있죠. 이런 부분들이 제주만의 자연을 녹여내면서도 도민들을 위한 제주도립미술관의 설립 취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립미술관 전경 (출처: 제주도립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2019년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문화예술 공공수장고를 개관한 제주도립미술관은 지난해 수장고 증축 사업을 계획하고 발표했는데요. 공공수장고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증축을 계획하게 된 이유와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공공수장고는 제주도 내 부족한 수장 공간을 대체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처음에는 1,500점을 수장하기 위한 공간으로 2019년에 개관했어요. 하지만 2021년 초에 이미 전체 수장 공간의 90%가 가득 차게 되었죠. 그래서 제가 2020년 말에 취임한 후 바로 연구 용역을 시작해서 수장고 증축 계획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최근에는 관람객들이 수장고 안에 있는 작품들도 들여다볼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가 많이 건립되고 있어요. 제주도립미술관도 이 트렌드에 맞춰 수장고 안의 작품들을 볼 수 있도록 시설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공공수장고 건립 초기에 작품 보존 처리 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작품 유형별로 보존처리실을 설치하는 안도 반영되었습니다. 이후 작품 2,000점을 추가 수장했고, 올해는 시설 디자인도 마무리되었어요. 예산 심사까지 무리 없이 통과하면 내년에 착공 후 1~2년간의 공사 과정을 거쳐서 2025년에 개관할 예정입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각종 전시연계 프로그램들을 통해 도민들에게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활발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2020년 관장직에 임용되신 후 도민 혹은 일반 시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관장직에 임명되었던 2020년 11월은 코로나가 정말 심각한 시기였습니다. 4인 이상 집합 금지 등의 방역 수칙들이 아주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었죠. 그래서 저는 온라인 도립미술관을 세우는 데 주력했어요. 말 그대로 제주도립미술관을 가상 공간에 또 하나 만들고 그곳에서 실제 전시를 관람하도록 하는 거죠. 온라인 도립미술관 구축이 완료된 후에는 도민이 직접 참여해서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공모를 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었어요. 이처럼 많은 사람이 직접 제주까지 찾아오지 않아도 세계 어디에서나 전시를 관람하고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웹사이트를 활용하여 제주도립미술관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제 기준에 맞는 운영방식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히신 바 있습니다. 현재 온라인 제주도립미술관 플랫폼을 운영 중이며, 2023 뮤궁뮤진 어워드에서도 최우수상을 수상했는데요. 앞으로 온라인을 통해 어떤 콘텐츠를 더 선보일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앞서 관람객들이 소장품들을 볼 수 있는 구조로 공공수장고를 만든다고 말씀드렸었죠. 저는 관람객들이 온라인상에서도 언제나 전시 형태로 소장품을 관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일이라서요. 아직 모든 소장품을 전시하지는 못했지만, 분기별로 한 차례씩 소장품 기반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제주 공식 홈페이지

《이주하는 인간_호모 미그라티오》 ‘우발적 이주’ 전시 소개 영상
제주도립미술관은 현재 진행 중인 국제특별전 《이주하는 인간_호모 미그라티오》를 통해 주목을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나 환경 문제를 포함한 여러 이슈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번 전시를 통해 제주도립미술관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해당 전시는 제가 대학 졸업 후 20년간 직간접적으로 꾸준히 리서치한 아카이브를 응축한 전시입니다. 저는 제주에서 태어난 후 서울과 뉴욕에서 공부하며 오랫동안 이주라는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주로 이주한 친구들과 함께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예술가들의 글과 그림을 모아 유통하는 문화예술 잡지를 발간했어요. 제주도가 유럽에 처음으로 소개된 이름(켈파트, Quelpart)을 따서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오랫동안 관심 가져온 주제인 이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거죠.
전시를 구성하는 4가지 섹션이 독특한데요. 각각 역사적 이주, 문화적 이주, 생태적 이주, 우발적 이주를 다루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우발적 이주는 ‘예술적 이주’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단순히 평면에 그림 그리는 것을 예술이라고 여겼던 시대에 백남준은 처음으로 비디오 아트를 선보였어요. 이후 선구자로서 비디오 아트를 유행시켰죠. 매체를 이주시켜버린 거예요. 본인의 예술 표현을 위해서 우발적인 기회로 매체를 이동시키는 것을 예술적 생존을 위한 이주로 해석할 수 있는 거죠. 이처럼 이번 전시를 통해 물리적이고 한정적인 틀에서 벗어나 이주의 개념을 폭넓게 사유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2020년 당시 ‘최연소 관장’이라는 타이틀로 주목받으셨죠. 2020년에 제주도립미술관장에 임명된 뒤, 2년의 임기를 채우고 1년을 더 연임하셨습니다. 임기 중에 가장 중점을 둔 사업은 무엇이었는지, 원하는 목표는 모두 이루었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점을 두었던 사업은 제2회 제주 비엔날레가 취소되면서 국제행사를 진행할 수 없을 때 제가 처음으로 만든 대안형 행사예요. 바로 ‘프로젝트 제주’입니다. 오직 제주 안에서 제주 작가들과 함께 제주 이야기로만 전시를 기획해 보겠다는 취지로 만들었어요. ‘프로젝트 제주1’은 2021년도 11월에 개최됐고, 지금 진행 중인 《이주하는 인간_호모 미그라티오》가 ‘프로젝트 제주 2’입니다. 프로젝트 제주의 이름을 빌려서 비엔날레와 다른 방식으로 제주형 국제행사를 시도한 거죠. 사실 대외적으로 보기에는 제주 비엔날레가 가장 규모가 큰 현안 사업이었고, 잘 마무리했기 때문에 제 임기 중 가장 큰 업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직접 기획했다는 점에서 그만큼 의미부여도 더 컸던 프로젝트 제주 1, 2가 가장 주력해서 원하는 목표를 이룬 부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젊은 예술가이자 비평가, 독립큐레이터이자 잡지 발행인 등 자유로운 행보를 보이셨던 터라 관료직이 적성에 맞으셨을지도 궁금한데요. 힘들거나 답답한 점, 아쉬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이 공무원의 관료적인 조직 구성과 행정에 대해 걱정하셨어요. 당시에는 제가 행정 경험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주변의 우려와 달리 저는 일이 적성에 아주 잘 맞았어요. 국공립 미술관의 학예과 인력들, 그러니까 큐레이터나 학예사들은 전문 공무원입니다. 운영과에서는 세금을 정산하고 집행하는 행정공무원들이 활동하고 있죠. 함께 일하시는 분들 모두 정당한 이유와 적합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고, 함께 소통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무리도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오히려 젊기 때문에 유연하게 대처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관료적으로 업무를 지시했다면 마찰이 생길 수 있었겠죠. 저는 개방적인 관점으로 경청하고 이야기하며 문제를 풀어갔기 때문에 임기 중 업무상의 어려웠던 부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질문을 읽고 있는 이나연 관장
미술관을 이끌어가는 관장으로서 많은 역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제주도립미술관과 같은 공공미술관의 관장에게 특별히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도의회에서 제주 도민들을 대리하는 도의원들이 의견이나, 지역 작가들 개개인이 요구하는 주문 사항에 귀 기울여야 해요. 미술관 내에서도 학예과의 의견과 운영과의 의견을 모두 들어봐야 하고요. 미술관 운영을 위해 예산을 받으려면 도청과도 소통하며 의견을 충분히 듣고 소화해야 합니다. 미술관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저만의 방향성과도 균형을 이루어야 하죠. 이렇듯 관장에게는 미술관 운영이 매끄럽게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소통하고 논의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 필요합니다.
근 10년간 국내 국공립 미술관의 수는 3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몇몇 공립 미술관들은 지역문화 발전과 문화 향유 기회 확대 등을 위해 국립현대미술관과 협업을 이어가기도 하는데요. 앞으로 국내 공립 미술관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역별 공립 미술관은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이 이루어지며 설립되기 시작했어요. 지자체별로 운영되기 때문에 예산이나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해당 지역의 대표 미술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분기별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국립현대미술관장 주관하에 국공립 미술관장이 모여 각 지역 대표 미술관장 회의를 진행하고요. 제주도 대표로는 제주도립미술관 관장인 제가 참석합니다. 최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이건희 컬렉션으로 각 공립 미술관에서 진행할 순회전에 대해 논의 중입니다. 아무래도 국립현대미술관이 예산, 소장품, 리서치 자료 등이 가장 많기 때문에 다른 공립 미술관과 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앞으로 공립 미술관 사이에도 원활한 지역교류를 통한 제휴 전시, 사업 등 공동 기획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장님께서는 앞서 말씀하셨듯 취임 이후로 제주가 섬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쳐오셨습니다. 섬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지역에서 도립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한데요. 말씀하신 한계는 무엇이며,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떠한 것들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작품 활동이든 전시 기획이든 결국에는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섬은 지역 특성상 미술 인구와 전문 인력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제주 비엔날레를 기획하는 경우 사무국을 별도로 조직합니다. 미술관 인력만으로는 비엔날레급의 국제행사를 개최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외부 큐레이터나 예술감독, 홍보 직원들이 사무국을 꾸려 함께 협력합니다. 문제는 전문 인력들이 행사가 끝난 후에 다시 서울 등 다른 지역으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대형 행사를 개최하기 위한 노하우가 제주라는 섬에는 남지 않는 거죠. 저는 그 역량이 제주도에 쌓이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어요. 그래서 프로젝트 제주 2를 국제특별전으로 기획하면서 사무국 직원을 모두 제주 인력으로 꾸렸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호모 미그라티오 전시가 이러한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의 결과인 거죠. 이러한 것들이 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전문 인력이 없으면 전문 인력을 키워야죠. 그러려면 지역 청년 작가나 청년 기획자들에게 계속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으로서는 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게 제주도립미술관밖에 없기 때문에 도립미술관이 충분한 기회를 계속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공립 미술관에서 꿈을 펼치길 희망하는 청년 세대를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공립 미술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는 건 굉장히 특수한 일이에요. 학예사 시험을 치른 후에 말 그대로 공무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보다는 행정가에 더 가깝습니다. 대체로 행정공무원이 담당하는 행정 절차를 학예사들이 맡아서 진행하거든요. 공립 미술관 학예사 업무의 절반 이상이 행정 업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나머지가 전시 기획이나 작품 수집인 거죠. 기관에서 인턴십을 체험해 보시면 업무 대부분이 문서 작성과 행정 관련 일이라 많이 놀라실 거예요. 흔히 생각하시는 미술계 큐레이터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는 거죠. 다만 독립 기획자나 사립 기관의 큐레이터와는 달리 정년까지 매우 안정적으로 경력을 쌓아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안정적인 환경 안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면 공립 미술관 학예사가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창적으로 자신만의 전시를 만들고 싶다면 공립보다는 독립 혹은 사립 기관이 적성에 맞을 거예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맞는 진로 계획을 세우고 해당 기관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